
오늘 함께 알아볼 장식품은 던스터블 백조 장신구이다. 던스터블 백조 장신구는 백조 형태의 브로치로 1400년 무렵,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혹고니의 모양을 본 떠 만든 작품으로, 법랑과 금을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던스터블 백조 장신구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1965년 던스터블 수도원 자리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 당시, 고위 귀족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의 리버리(지금의 시종)에게 하사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작품에서 나타난 문양은 1399년 웨일스공이었던 헨리 5세로 추측되고 있다.
이 장신구는 중세 시대에 제작된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론드보스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론드보스 기법이란 투명한 흰색 법랑으로 금을 완전히 감싸는 기법으로, 같은 기법인 리처드 2세의 흰 사슴 문장과 비교가 된다.
작품을 유심히 바라보자. 백조는 혹고니를 나타낸다. 목에는 6개의 백합문으로 만들어진 왕관을 쓴 채 서 있다. 백조 오른쪽에 있는 브로치는 옷이나 모자를 고정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너비 2.5cm, 높이 3.2cm이며 체인의 길이는 8.2cm이다. 백조는 법랑으로 만들어졌는데 몸은 흰색, 눈동자는 검정색 법랑을 사용하였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법랑이 다리와 발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부리를 보면 조금 붉으스름한 것이 남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것도 붉은색 법랑으로 추정된다.
던스터블 백조 장신구는 중세시대에 사용되던 배지의 한 종류이다. 리버리 배지 가운데에서 가장 값비싼 형태의 것이다. 이런 비싼 배지는 회화 작품 속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에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중세 시기 귀족들은 자신을 상징하는 문양이 들어간 배지를 가문에 봉사하는 기사나 리버리에게 수여하였고, 이 추종자들은 이 배지를 착용함으로써 자신의 소속을 밝히거나 지지하는 대상을 표현할 수 있었다. 14세기부터 15세기까지 영국은 장미 전쟁과 같이 격렬한 왕위 다툼이 벌어지는 시기였는데, 서로 대적하는 파벌간 갈등이 있었으므로, 자신이 지지하는 가문의 문양을 드러낸 배지를 착용하게 된 것이다.
던스터블 백조 배지를 만든 귀족은 이 백조 배지를 자신의 추종자 가운데에서도 중요한 인물에게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 가족, 친인척,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람들만이 이와 같은 배지를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배지는 최상위 귀족의 것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는데, 던스터블 배지는 이 당시에 최상위 귀족이 착용했다고 알려진 것보다는 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 당시 문헌으로 남겨진 최상위 귀족들의 물건은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사자 모양의 펜던트, 에메랄드로 잔디를 묘사하고 사슴을 진주로 치장한 흰 사슴 문양 배지 등이 있으며 당시 부르고뉴 공작이었던 필리프가 하사받은 리처드가의 사슴배지에는 진주가 22개, 첨정석이 2개, 사파이어가 2개, 루비와 거대한 다이아몬드로 치장되어 있었다.)
한편 던스터블 백조 배지보다 저렴한 모양의 배지는 많이 만들어지고 많이 배포되었다.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이러한 배지는 잘못된 장소에 달고 나타나면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1377년 어린 국왕 리처드 2세를 대신해 그의 삼촌 존 곤트가 섭정을 하고 있었을 때, 존 스윈튼 경이 런던을 가면서 곤트의 배지를 달고 있었다. 그 때 당시의 곤트는 매우 인기가 없었고, 곤트를 싫어하던 사람들이 그를 말에서 내리고는 배지를 뜯어버렸다. 20년 후 곤트의 아들이 리처드 2세를 퇴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그 때 리처드의 신하 중 한 명이 여전히 리처드의 배지를 달고 있자 그를 감옥에 투옥시킨 사건도 있었다. 템스강 주변에는 다양한 종류의 배지들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아마도 화를 면하기 위해 급하게 듣어 강물로 던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도 있다.
에드워드 3세(리처드 2세의 할아버지) 시기만 하더라도 배지는 토너먼트에서 우숭한 사람에게만 주어지거나, 궁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제작되는 것일 뿐, 정치적인 의미를 지니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리처드 2세를 거치면서 배지는 파벌의 상징이 되었고, 이는 리처드 통치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은 요소였다. 영주들도 자신의 배지를 휘하에게 지급했는데, 주로 이 곳에서는 영주의 뜻을 대신한다라는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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